말씀 -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스스로 쉼을 얻게 될 것입니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 (오늘의 복음, 매트 11)

주님을 바라는 자들은 그들의 힘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그들은 독수리의 날개를 치듯 날아오를 것이다.
그들은 달려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며
걸어도 기절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첫 미사 읽기, 이사야서 40)

 

인간의 마음을 그토록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많은 것들이 있지만 모두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우상숭배 — 하나님에 대한 사랑보다 다른 것, 사람 또는 열정을 우선시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아름답게 선언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을 위해 우리를 지으셨고 당신 안에서 안식을 찾을 때까지 우리 마음은 불안합니다. — 히포의 성 어거스틴, 고백, 1,1.5

단어 우상 숭배 말하자면 금송아지와 외국 우상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21세기의 우리를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상은 새로운 형태를 취하더라도 덜 실제적이고 영혼에 덜 위험하지 않습니다. 세인트 제임스는 다음과 같이 권고합니다.

너희 가운데 전쟁이 어디에서, 다툼이 어디에서 오느냐? 당신의 지체들 사이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당신의 정욕 때문이 아닙니까? 당신은 탐내지만 소유하지는 않습니다. 너희는 죽이고 시기하지만 얻을 수는 없다. 당신은 싸우고 전쟁을 벌입니다. 당신이 구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은 소유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정욕에 쓰려고 잘못 구했기 때문에 구했지만 받지 못했습니다. 간음자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그러므로 세상을 사랑하는 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아니면 성경이 “하나님이 우리 안에 살게 하신 영이 시기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여 의미 없이 말하는 줄로 생각합니까? 그러나 그는 더 큰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말합니다. (제임스 4 : 1-6)

"간음하는 자"와 "우상 숭배자"라는 단어는 하나님에 관해서는 서로 바꾸어 쓸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신부이며, 우상에게 사랑과 헌신을 바칠 때 우리는 사랑하는 분을 상대로 간음하는 것입니다. 죄는 반드시 우리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것이 우리를 소유하도록 허용합니다. 모든 소유물이 우상은 아니지만 많은 우상이 우리의 소유물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소유물, 특히 우리의 존재에 필요한 것들을 "느슨하게" 붙들고 내적으로 분리되는 것, 놓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다른 때에는 문자 그대로 우리가 우리에게 주기 시작한 것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분리해야 합니다. Latria, 또는 숭배.[1]고린도후서 2:6: “그러므로 저희에게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그러면 내가 당신을 영접하겠습니다.”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입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침륜과 멸망에 빠지는 것이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버리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딤전 1:6-8; 히 9:13)

좋은 소식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2]로마서 5 : 8 즉,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의 불성실함에도 불구하고 여러분과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단순히 이것을 알고 그분의 자비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James는 계속해서 “노인"- 후회:

그러므로 하나님께 복종하십시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에게서 도망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가진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한탄하고 애도하고 울기 시작하십시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기쁨을 근심으로 바꾸라.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그러면 그가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제임스 4 : 7-10)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그는 한 사람을 미워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거나, 한 사람에게 헌신하고 다른 사람을 경멸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존. (Matthew 6 : 24)

보시다시피,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측량할 수 없고 충만한 하나님 자신의 팔복(육신을 부인하는 십자가와 함께 오는 것)을 선택하거나 일시적이고 덧없는 악의 매력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은 단순히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문제가 아닙니다.[3]마태복음 7장 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것은 "영과 진리"로 그분께 나아오는 것입니다.[4]존 4 : 24 그것은 우리의 우상 숭배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다음 그 우상을 부수십시오., 어린 양의 피에 의해 그들의 먼지와 속이 진정으로 단번에 완전히 씻겨질 수 있도록 그들을 뒤에 남겨 두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한 일에 대해 탄식하고 애통하고 통곡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오직 주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그분의 멍에를 우리 어깨에 지우시고 우리에게 그분의 안식을 주시고 우리의 힘을 새롭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성도들이 지금 여러분이 있는 곳에서 여러분에게 나타날 수만 있다면, 그들은 우리 삶의 작은 우상 하나를 신성한 교환으로 영원히 보상과 기쁨을 찾을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집착하는 것은 그런 거짓말이며, 이 똥이나 "쓰레기" 때문에 우리가 상실한 영광을 상상할 수 없다고 성 바울은 말합니다.[5]cf. 빌 3 : 8

우리 하나님과 함께라면 가장 큰 죄인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6]참조위대한 피난처 및 면책대죄에 처한 사람들에게 그 또는 그녀가 진실한 회개로 아버지께 돌아가는 한. 진정으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우상에 집착하고, 성령의 재촉에 귀를 닫고, 진리의 빛에 눈을 감고, 조금의 유혹도 예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다시 어둠 속으로 몸을 던짐으로 죄로 돌아갑니다.

아마도 오늘, 당신은 당신의 육체의 무게와 당신의 우상을 운반하는 피로를 느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도 남은 인생의 시작. 그것은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그분 없이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7]cf. 요한 복음 15:5

참으로 나의 주님, 나에게서 나를 구해줘....

 

 

—Mark Mallett은 지금 말씀, 마지막 대결, 그리고 Countdown to the Kingdom의 공동 설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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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각주

1 고린도후서 2:6: “그러므로 저희에게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그러면 내가 당신을 영접하겠습니다.”
2 로마서 5 : 8
3 마태복음 7장 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4 존 4 : 24
5 cf. 빌 3 : 8
6 참조위대한 피난처 및 면책대죄에 처한 사람들에게
7 cf. 요한 복음 15:5
에 게시 됨 기여자로부터, 메시지, 경전, 지금 말씀.